한국사람은 왜 영어를 못할까…모범생 콤플렉스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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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매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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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한국사람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0년 이상 영어공부에 매달린다. 다른 비영어권 국가보다 평균 지능지수(IQ)도 월등히 높고,영어교사 자질도 우수하다. 영어실력이 한국처럼 높이 평가받는 나라도 드물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영어를 못하기로 유명하다. 도대체 왜일까. 

서울대 언어학과 이호영 교수는 현 교육체계에서 한국인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는 학술지 강원포럼 기고문 ‘영어학습 어떻게 해야하나’를 통해 한국인의 ‘모범생 콤플렉스’와 영어 말하기 실습 시간의 절대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IQ는 높은데…=2002년 북아일랜드와 핀란드의 대학교수들이 공동으로 펴낸 ‘아이큐와 국부’란 책에 따르면 한국인 평균 IQ는 106으로 홍콩(107)을 제외하고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교육 과정에서 영어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은데도 훌륭한 영어를 구사하는 스웨덴(101),노르웨이(98)보다 월등히 높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자료가 보여주듯 “한국 사람이 지능이 낮아 영어를 못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일부 학부모들이 주장하는 영어교사 자질 문제도 원인이 되지 못한다. 이 교수는 “그동안 국내 대학 교원 계통에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몰렸다”며 “이들의 지능이나 자질이 다른 나라 영어교사보다 결코 뒤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한국에선 영어만 잘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직장에서도 더 좋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력을 다해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며 “영어에 대한 성취동기가 낮다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모범생 콤플렉스=지능도 높고,교사도 우수하고,성취동기도 높은데 왜 한국사람은 외국인 앞에만 서면 벙어리가 될까. 

이 교수는 한국인의 회화 실력이 떨어지는 중요 요인 중 하나로 ‘모범생 콤플렉스’를 꼽았다. 우리나라 학교에선 영어를 잘하면 우등생,못하면 열등생이란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영어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영어성적이 좋은 학생은 자신감을 갖지만,나쁜 학생은 영어에 흥미를 잃고 기피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사람이 ‘영어 말문’을 쉽게 열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영어로 말하다 틀릴까봐,틀리면 남들이 자신을 열등한 사람으로 볼까봐 차라리 벙어리가 되기를 택한다는 것이다. 오랜 영어 교육을 통해 충분히 많은 영어 단어를 알고 있는 한국사람이 모범생 콤플렉스 때문에 아는 영어를 말로 꺼내지 못한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최근 제2 외국어로 각광받고 있는 중국어를 한국사람이 비교적 빨리 배우는 까닭은 모범생 콤플렉스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중국사람에 대한,중국어에 대한 열등감이 없어 표현이나 문법이 틀려도 구애받지 않고 말하기 때문에 학습속도가 빠르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턱없이 부족한 말하기 실습 시간=이 교수는 “영어로 필요한 업무를 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2400시간 이상 전문적인 말하기 쓰기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받는 영어 수업은 730여시간이다. 초등학교에서 매주 1∼2시간,중학교에서 매주 3∼4시간,고등학교에서 매주 4시간씩 영어수업을 한다. 대학에서 수강하는 영어 과목까지 합해도 800시간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런 정규교육으론 영어 구사력을 충분히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추가로 영어공부에 시간을 투자한다. 대학입시를 위해,취업시험을 위해,직장 승진을 위해 정규 수업 외에도 최소 하루 평균 30분씩 영어에 할애하므로 한국인이 영어공부 시간은 3000시간이 넘는다. 

그러나 이 교수는 결코 적지 않은 3000시간 가운데 말하기에 들이는 시간은 매우 적다고 지적했다. 초·중·고교에서 회화 수업이 있긴 하지만 학급당 학생 수가 많아 수업 중 실제 영어로 말해볼 기회는 드물고,대학에서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또 학교 밖에선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 많은 돈을 들여 학원에 다니거나 개인교습을 받기 전에는 말하기 실습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교수는 또 시험 준비에 초점을 맞춘 영어교육이 오히려 영어실력 향상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 영어 교육은 대부분 단어 문법 독해에 관한 것이고 말하기 듣기 쓰기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머릿속의 단어와 문법에 관한 지식이 활성화 되지 않아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입도 뻥긋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려면=이 교수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학습시간이 관건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말하기 연습에 집중해야 한다. 외국에서 현지인과 직접 접촉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불가능할 경우 국내에서도 멀티미디어 교재와 인터넷,TV 등을 적극 이용해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거나 영어 채팅도 좋은 방법이다. 

또 영어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이 교수는 “대학생의 경우 일상생활 대화에 필요한 1500단어 이상을 알고 있다”며 “영어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영어를 말하고 연습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